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8)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5. 9. 6. 20:45

본문

통일전 내의 태종무열왕 김춘추.문무대왕. 김유신장군 영정.

통일전 정문.

통일전 안내문, 신라가 이룩한 삼국 통일의 위엄 을 기리고, 한국의 통일에 의지와 염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통일전 스템프 존.

정문으로 들어서니 중앙광장의 소나무.

경북선열의 독립 호국정신으로! 통일조국의 희망을 불 밝히다.

화랑전 앞의 연못.

삼국통일 무명용사비.

흥국문.

바닥계단이 서원문까지 길게 설치되어 있다.

태종무열왕,문무대왕,태대각간 김유신 장군의 사적비.

삼국통일 기념비. 

통일전.

좌우 회랑에는 삼국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 기록화가 전시 되어 있다.

삼국통일대업을 이룬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장군 영정.

문무대왕.

태종무열대왕.

추존 흥무대왕.

통일전은 호국 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 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주 서출지 안내문.

『삼국유사』기이 제1 사금갑조에 실려 있는, 신라 21대 소지왕(일명 비처왕)이 즉위 10년(488)에 못 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서출지 전경.

배롱나무 노거수 쉼터.

이요당 정자.

서출지 스템프 존.

조선 1664년(현종 5)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물 위로 누마루가 돌출한 팔작지붕의 건물을 지어 글을 읽는 한편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임적 (1612 ~ 1672)이 지은 정자인 이요당.

『삼국유사』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연못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원지가 아니라 마을 밖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못으로  보이며 곡지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사금갑의 전설이 생겨난 뒤 서출지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경주(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안내문.

2003년과 2008년에 걸쳐 진행된 발굴조사를 거쳐, 8세기 초반에 창건되어 12세기에 폐사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 사지에 위치한 동ㆍ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전반에 건립된 5.85m 높이의 삼층석탑이다. 

서탑은 무너져 있었던 것을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동탑과 함께 원위치에 복원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동탑과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서, 삼층석탑.

동탑은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되었던 것을 2009년 사지 정비와 함께 원위치에 이전 복원되었으며, 탑지 발굴조사 결과 서탑과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기초부를 추가로 조성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옥개석과 석탑 부재들.

두 탑은 복원 과정에서 일부 새로운 부재들이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 석탑 기초부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할 때, 8세기 전반에 건립되어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과 양식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 국가지정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안내문.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스템프 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기(基). 동탑 높이 7.04m, 서탑 높이 5.55m. 형식을 달리하면서 동서에 대립하는 특수한 탑이다

 동탑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과는 달리 모전석탑의 형식을 취하였다. 바닥돌 위에 직사각형 같은 돌을 2단으로

쌓고, 그 위에 몸돌을 얹은 후 지붕돌을 계단식으로 표현한 독특한 형태를 띠우고 있다.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잘 다듬어진 8개의 기단석을 커다란 괴체형 (덩어리모양)으로 처리하여 입방체의 단층기단을 형성하였다. 기단의 윗면에는 3단의 각형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게 하였다.

석탑의 구조는 중층에 체감을 보이는 일반형 석탑과 동일하나, 기단과 옥신 · 옥개 등의 수법에  변 화를 나타낸 특수형식이다.

탑 부재품.

석탑의 구조는 중층(重層)에 체감을 보이는 일반형 석탑과 동일하나, 기단과 옥신 · 옥개 등의 수법에 변화를 나타낸 특수형식이다. 서탑은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운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으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나, 상륜부는 노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하층기단은 하대저석과 중석을 같은 돌 4매로 구성하였으며, 하대 갑석 역시 4매석으로 윗면에 상층기단 중석의 받침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의 중석은 4매석으로 구성되어 중간의 탱주 1주로 구획되어, 각 면 2구씩 도합 8구의 팔부중을 부조로써 나타내었다.

팔부중은 모두 좌상으로서 삼두팔비(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덟인 모습)의 아수라상 이라든지, 뱀관을 쓰고 있는 마후라상 등이며, 이들은 입에 염주를 물었거나 손에 여의주 · 금 강저를 든 모습 또는 합장한 모습 등이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모두 1매씩으로 되었고 각 층의 체감 역시 좋은 편이다. 옥신에는 각 층에 우주를 모각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두 탑은 그 형태가 상이한 것이 특징인데, 신라통일기의 동서쌍탑은 대체로 동일양식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특이한 형식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탑의 건립 역시 서탑의 상층기단에 나타난 조각상의 형식에 준하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쌍탑이 속해있는 사찰의 이름이나 규모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정확한 절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의 남산사『삼국유사』의 남산 동쪽에 양피사 등의 이름과도 연관하여 고찰해 봄직하다.

보존유적.

경주 남산동 건축유적.

산수당 담장의 능소화.

 풍천 임씨들이 건립했다는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앞에 위치한 양피저수지의 산수당.

양피저수지.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양피저수지 안내문.

저수지옆 산수정을 건축한  임극은 이현의 아들이다.
호는 산수당 이고 한학문에 능통하였으며 , 사림으로 부터 추중을 받았다.

연꽃으로 뒤덮힌 양피 저수지.

앞의 배롱나무도 붉게 피웠다.

교동쌈밥.

1인분이 안되어 2인분으로 시식.

동대구역 복합 환승센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