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나정 팔각 건물터.

나정구조와 안내문.

나정 스템프 존.

나정은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의 탄생과 관련한 설화가 전하는 곳이다.

역시 빠질수 없는 소나무 숲.

탑동에 있는 나정은 신라 건국설화에서 초대 왕 혁거세 거세간이 처음 태어났다고 전하는 장소로, 1975년 11월 2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본디 그 이름대로 우물이 있었다고 추정했으나, 2002년에 발굴을 시작한 후, (기존에 우물 터라고 생각한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가 원 우물 터라는 주장과 처음부터 우물이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발굴단은 다른 자리가 원 우물 터라고 판단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문무왕 때 이 자리에 신을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하였다.예전에 없던 건물 터에 신궁 기초석을 세웠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2대 왕 남해 차차웅 3년(서기 6)에 이곳에 시조묘를 세웠고, 이후에 이 자리에 신궁을 세우는데 이때부터 수백 년이 지난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신라왕이 새로 즉위하면 반드시 즉위 초기에 신궁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들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한곳에 기초석 기단석 석재부재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 유허비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을 일제강점기에 같은 내용으로 비석을 복제하여 새로 세운 것이다. 원래 있던 비석은 땅 속에 묻혔지만 발굴 과정에서 발견하였다.

주위의 발굴된 담장터.

나정옆에도 유물발굴이 한창이다.

보광사.

보광사 대웅전.

노천의 부처님.

옆의 금강저수지,문두루비법으로 당나라 수군을 물리친 신인종의 시조인 명랑법사의 집터라고 하던데 ...

일성왕릉 가는 길.

소나무 숲 사이로 고즈녁하게 일성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왕궁을 탐구하던 신유림을 기리며...추모비?

탑동 산23번지에 위치한 신라 제7대 국왕 일성 이사금 박일성의 능이다. 1969년 8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일성왕릉 안내문.

일성왕은 134년에 즉위하여 154년에 승하하였으며 20년간 재위하면서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민간에서 금·은·옥의 사용을 막아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였다.

왕릉은 경주 남산 서쪽의 약간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마련하였고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 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일단 돌려 무덤의 보호석 및 봉토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으나 다른 특징은 없다.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무덤의 내부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비비추.

육부전 정문격인 대덕문 외삼문.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육부전 안내문.

육부전은 2019년이 되서 바뀐 명칭이고 이전에는 양산재 라고 불리었다.

육부전을 관리하는 고직사 담장을 통해 육부전으로 출입한다.

육부전 건물이 보이고...

육부전 들어가는 내삼문격인 홍익문

전사청.

신라가 건국하기 전에 진한 땅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면서 육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첫째는 알천양산촌(이씨), 둘째는 돌산고허촌(최씨), 셋째는 취산진지촌(정씨), 넷째는 무산대수촌(손씨), 다섯째는 금산가리촌(배씨), 여섯째는 명활고야촌(설씨)이라 하였다. 6촌장 위패를 모신 공간.

정문인 대덕문.

양산재=육부전.

윤적당과 양산재,익익재.

양산재(동재)

익익재(서재)

윤적당(강당)

윤적당 편액.

좌측의 방 화백원.

우측의 방 조국청.

육부전 탐방을 마치고.

경주 포석정지.

포석정을 감싼 느티나무.

포석정내부 소나무 숲.

고사목.

사적 제1호.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에 헌강왕(875~885)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은 927년 경애왕이 왕비·궁녀·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이기도 하다.

포석정은 경주 서쪽 이궁원에서 열리는 연회를 위해 만든 것으로 시냇물을 끌어들여 포어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에 흐르게 하고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한다.

석조 유구.

유상곡수라는 시회로 중국 동진시대부터 유행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화려했던 궁정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포어 모양의 수구뿐인데 일제시대에 임의로 보수되어 수로곡석의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지마왕릉 안내문.

지미왕릉 스템프 존.

지마왕릉 주위의 소나무.

1971년 4월 21일 사적으로 지정, 지마이사금은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의 아들로서 성이 박씨다. 어머니는 사성부인이며 왕후는 김씨 애례부인이다.

지마이사금은 대략 23년의 재위기간 동안 가야·왜·백제와 군사적인 대치를 벌이는가 하면 외교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왕릉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일단 높은 곳에 만들고,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 이다. 무덤의 지름은 12m, 높이는 3.4m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식물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삼릉 가는길.

삼릉 스템프 존.

삼릉을 향해 누어진 소나무 숲.

배리 삼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횡혈식석실분이다. 1971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린다.

세 고분 모두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도 모두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이다.

삼릉 소나무 숲.

배동 삼릉 안내문.

서쪽으로부터 각각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다.

삼릉을 향해 누운 소나무 숲.

좌측의 신라 초기의 아달라이사금과 700여 년이나 시간적 간격이 있는 하대 신덕왕과 경명왕의 능이 한 곳에 모여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이 삼릉이 앞의 세 왕의 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좌측의 신덕왕릉에서는 북벽과 동서 양벽의 일부에 마치 병풍을 돌려세운 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에서 확인된 유일한 채색벽화이다.

뒷면에서 바라 본 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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