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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3)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5. 9. 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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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산 경주역사 유적지구.

대릉원.

비단벌레 전기 자동차.

비단벌레와 신라문화 안내문.

신라시대 월성주변 숲속을 날아다니는 비단벌레를 연상하고,개체수가 적고 역사적 문화가치가 높은 곤충으로 문화재청에서 2008년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 하였다. 

경주 인왕리 고분군.

첨성대 안내문.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 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첨성대 스템프 존.

1937년 경주 첨성대에서 촬영한 고등학교 수학여행 기념사진. 지금은 접근을 통제하지만 과거에는 아무나 첨성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사진=대구교육박물관.(폄)

사다리를 설치하여 내부로 들어가서 천문을 관측.

국가유산 방문코스 방문자 여권, 경주 월성, 첨성대 2개소 인증 스템프 직인. 

경주계림 안내문.

계림숲.  왕버들 · 느티나무 · 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곳이다. 

 계림에는 약 100여 주의 고목이 우거져 있으며 1803년(순조 3)에 세운 비가 서 있다.

계림비각.

신라김씨시조알지탄생비?

시림이라 부르다가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난 이후부터 계림이라 하였다.

회화나무.

건물 터 안내문.

기초석인 주춧돌만 남았는 건물 터.

월성과 건물 터사이의 월성 해자.

월성 해자 안내문.

월성은 신라가 존속할 때까지 궁성으로 기능한 곳으로, 성의 외곽에는 외부 차단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랑시설인 해자가 존재하였다.

 발굴당시 매몰된 해자의 내부에서는 신라토기를 필두로 목제 배 방등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는데, 그 속에는 문자기록이 남은 목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5세기 후반~6세기 경 신라 목간 130여 점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소장 하였다.

월성 내부로 이동.

월성아래 남천의 백사장.

남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옛 궁궐의 건물자리에 나무숲만 무성하다.

월성은 현재 발굴 진행상태.

경주 월성 이야기.

보물 제66호. 1738년(영조 14) 부윤 조명겸이 목조의 빙고를 석조로 축조하였다가 4년 뒤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석빙고 입구 이맛돌에 '숭정기원후재신유이기개축' 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부는 동서로 홍예 5개를 틀어올리고 홍예 사이에 장대석을 걸쳐서 천장으로 삼았으며 북쪽 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월성 북쪽의 둑을 잘라서 남쪽에 입구를 내고 안으로 바닥을 경사지게 했으며 바닥 중앙에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밖으로 빠지도록 했다.

  천장에는 배기공을 3곳에 두었는데 지금의 배기공 위에 있는 석재는 근래의 수리 때 놓은 것이다. 출입구는 너비 201cm, 높이 178cm로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영조 때 만든 석빙고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그중에서도 경주 석빙고가 가장 완벽하다.

소나무사이의 월성의 흔적.

해자건너 문화재 발굴단. 

월성내 발굴이 한창이다.

 

석빙고 옆 큰 비석의 정체는? 석빙고 표지석?

월성이랑... 

초생달 조형물과 포토존.

월성C지구 유구를 정비 학술연구용역을 수행하는 장소 안내문.

포장공사를 마친 산책로.

월성은 신라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몰락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있는 신라의 흔적이다.

월성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 신월성 이라 하였고 왕이 살고 있다는 뜻으로 재성 이라고도 하였다.

석빙고와 숲, 산책로 만 남아있는 월성은 신라인들의 삶과 역사를 밝히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첨성대가 보이는 백일홍 군락지.

경주월성.

신라왕궁 영사관.

영상미.

월성의 해자.

동궁과 월지 안내문.

동궁과 월지 스템프 존.

복원된 건물과 임해전.

능지탑지 안내문.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탑터. 1982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능지탑의 외관은 1979년에 보수할 때 임시로 정사각형 평면의 2층 석조 축단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터의 향좌측에는 보수할 때 사용하고 남은 연화석 36개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성격이 구명되지 않은 토단 유구가 남아 있다.

기단부는 한 변의 길이가 12m, 높이가 1m인 석단으로, 상부의 낙수면은 토층으로 덮고 잔디를 심는 방식으로 마감.

둘레의 중대석에는 12지상 9구를 방위에 맞추어 같은 간격으로 기둥처럼 배치하였다.

양모양의 십이지신상.

능지탑은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으로 불려왔는데, 무너진 채 1층탑신 일부와 기단 약간만이 돌무더기처럼 버려져 있던 것을 신라삼산조사단이 1969년 이래 1971년까지 4차에 걸쳐 조사한 끝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문무왕의 화장터 유적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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