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평왕릉.

낭산일원 안내문.

사위질빵꽃.

선덕여왕가는 소나무 숲.

낭산 신유림 도리천에 영면하고 계시는 선덕여왕.

632년 왕이 되어 647년에 승하할 때까지 15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연호를 인평으로 고치고, 분황사를 창건하고, 특히 첨성대ㆍ황룡사9층탑을 건립하는 등 문화발전에 힘썼으며, 김유신 김춘추 등의 보필로 선정을 베풀었다.

선덕여왕릉 안내문.

선덕여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제26대 진평왕의 맏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며, 진평왕이 아들없이 승하하자 추대로 왕이 되었다.

왕릉의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길이 30∼60㎝ 크기의 자연석을 사용해 2, 3단 쌓아올려 무덤의 보호석렬을 마련하였다.

선덕여왕릉 스템프 존.

196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1968년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낭산 일원의 전체 면적 82만 7,848㎡에 포함되어 있다. 왕릉의 지름은 23.6m, 높이는 6.8m이다.

낭산 남쪽의 아래의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건립하여, 사천왕을 모셨고 사천왕이 있는곳을 사왕천이라 하고 그 위에 있는 부처님나라를 도리천이라 한다...여왕의 현명한 지혜가 돗 보인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스템프 존.

황복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낭산 동북쪽의 구황동에 위치한 황복사터에 있는, 전체 높이 7.3m의 화강암제 삼층석탑으로 통일 신라시대의 효소왕 원년인 692년에 건립 되었다.

효소왕은 어머니 신목왕후와 함께 아버지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고, 이후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이 706년, 다시 아버지 신문왕과 효소왕 그리고 왕실의 안녕 및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기도 위해, 진신사리와 순금불상등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경주 낭산 동쪽 기슭에 황복사가 있었다고 하기에 여기가 황복사 터라고 여긴다. 또한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황복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의상대사가 출가했고 황복사에서 경문왕의 화장을 치렀다고 하므로, 지위가 높은 사찰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보문벌판의 낭산추정 고분지 왕릉석재로 추정되는, 석재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발굴 조사 하는 모습이다.

추정 고분지 옆에 귀부가 놓여 있다.

거북이 무늬가 새겨져 있는 파손된 귀부.

다시 각도를 바꾸어 보니 선명한거북무늬이다.

또 하나의 파손된 귀부.

반파된 귀부, 비문은 어디로...

보문벌판 위 진평왕를 가는 농로.

명활성가는 길목.

국보 제37호인 황복사지 삼층석탑.

진평왕릉 산책로.

경주 시가지 동쪽 보문 들판 한가운데 보문동에 위치한 신라 제26대 국왕 진평왕 김백정의 능이다. 사적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진흥왕의 장손자이며 어머니는 만호부인이고, 왕비는 마야부인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승하할 때까지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는 한편 수나라와 수교하였고,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하였다. 국내적으로는 원광ㆍ담육 등 승려를 중국에 보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에 힘썼다.

왕릉주위의 무릇.

빠질수 없는 왕릉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들.

멀리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특히 경주 남산성을 쌓았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수도 방위대책에 힘썼다. 한지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의해 장지를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진평왕릉 스템프 존.

왕릉주위의 느티나무군락지.

왕릉주위의 배수시설도 설치.

무덤의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서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무덤 보호석렬을 갖춘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 개만이 보인다. 이와같이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렬을 마련한 예는 아달라왕릉 등 신라왕릉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나비의 망중한.

선덕여왕 둘레길.

둘레길은 맨발산책로.

보문벌판.

명활성 800m.

나무위의 곰돌이인형.

진평왕를 가는 길 1.8km.

명활성 가는 이정표.

명활성 주차장.

명활성 스템프 존.

명활산 꼭대기에 위치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km의 신라시대 산성으로 당대의 왕경 방어 시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설이다.

명활성 안내문.

성곽탐방로. 신라 역사를 통틀어서 왜구가 이 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종종 확인할 수 있

북문지 성곽탐방로.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은 왜구가 주로 침공하는 경로인 동해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훨씬 큰 과제였다. 즉 동해와 경주 시가지 사이 요충지에 있는 이 성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남북으로 두개의 성채로 나뉜다. 남성은 흰등산에, 북성은 명활산에 각각 축성되어 있는 성으로 얼핏 보면 서로 별개의 산성이지만, 서로 딱 붙어있으며 또 성벽이나 교통로로 보이는 지형물을 따라 연결까지 되어있는 것이 과거항공사진으로 보이므로 사실상 두 성은 하나의 성이라 보여진다.

명활성은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 5개의 지구 중 산성지구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보문 물너울교 안내문.

물너울교 가는 통로.

2013년 디자인 공모를 통해 탄생한 이 다리는 신라 경덕왕 시대 월명사 스님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다. 어린나이로 죽은 누이를 애도하며 지은 '제망매가' 속 달을 모티브로 하여,부드러운 아치 형태를 구현 한 것이다.

물너울교 스템프 존.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신라의 역사적 상징성, 감성을 함께 느낄수 있다.

보문호반.
|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6) (0) | 2025.09.06 |
|---|---|
|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5) (0) | 2025.09.02 |
|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3) (0) | 2025.09.02 |
|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2) (0) | 2025.09.02 |
| 경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1) (1) | 2025.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