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 수승대 관광지.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버스 정류장에 주차를 하고 주위 2시간 관람 하고, 12시에 모여 함양 농월정으로 이동 점심을 시식 하기로 한다.

수승대 종합 안내도.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 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그리 하였는데 거북바위에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한 여름 밤의 꿈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수승대에서 거창국제 연극제가 열린다.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요, 모든 인간은 제 각각 맡은 역활을 위해 등장 했다가 퇴장해 버리는 배우에 지나지 않죠'
뜻대로 하세요 의 대사중.





특이하게 보이는 네 개의 팔각 서주위에 지붕돌을 얹고, 그 속 작은 귀부 위에 비석을 세워 드물게 보는 석조 정려가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청송당(聽松堂)은 청송 신복행 선생의 강학지소 이다. 신복행은 중종(1533) 계사년에 요수선생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 는 성지, 호는 청송당이다.

선생의 훈육 일성은 “지나친 자랑과 헛된 찬성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광해 2년(1610)에 북상면 농산리 사라산 아래에 집을 세우고 경내에 다섯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청송당이라 자호로 삼았다.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 건립 하였으나, 임란때 소실 및 수해를 입어 1805년 현 위치로 이전.











하심송의 뜻 글귀, 무조건 똑독하고 자기 잘났다고 머리 쳐들기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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