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바위.

거북바위 가는 너럭바위.

구연교.

물가운데 놓인 너럭바위에서 시인묵객, 선비들이 시회를 열어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








구연교를 지나 연반석이 있는 첫번째 너럭바위, 세필짐을 지나 두번째 너럭바위, 그리고 석교.


거북바위에는 갖가지 글들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 수승대라는 명칭을 가지기 전까지 신씨 일가와 임씨일가의 논쟁과 다툼이 있고 서로 글을 새겼다고 한다.





신성렬과 진양강씨 지려. 신성렬은 영조 기묘(1759)에 요수 신권의 8세손 이다. 학문에 열중하여 소학을 평생의 부적처럼 삼았고 42세 되던 해에 마을에 천연두가 만연, 어버이를 떠날 수 없다하여 구차하게 피하지 않다가 마침내 병에 걸려 졸 하였다. 고종(1883)년 효자 신성렬과 그의 처 강씨 부인의 정려가 내려졌다.

효자 증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신성렬 지려, 열녀 증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성열처 증 숙인 진양강씨지려.




효자각, 황강 신성진. 영조(1752) 황고 신수이의 손자로 태어나 순조(1830)에 78세로 졸 하였다. 자는 정보, 호는 황강. 부친 병간호에 단지주혈하여 효성과 더불어 백성을 사랑하여 철종(1857) 정려가 내려졌다.

효자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 겸 경연참 참관 춘추관 수찬관 신성진 지려.

열녀각, 유인 안동권시는 청송당 신복행의 후손 신재주의 처이다. 19세에 시집와 반년도 못되어 남편 상을 당했다. 시부모를 봉양하다가 철종(1851) 4월에 3년상을 치르고 남편을 따라간 열녀이다.


서원 안쪽의 나무자태가 범상치 않은데 밖으로 나와 있다.









구연서원은 요수 신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숙종 20년(1694)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에 세운 신권이 제자를 가르쳤던 구연재를 개조하여 창건 되었다. 신권, 성팽년, 신수이도 배향.



요수선생은 '일찍이 벼슬은 남에게 받는곳이고, 내게 간직된 인품은 하늘이 준것이니 어찌 내게 있는 것을 버리고 남에게 있는 것을 구할 것인가' 하고 숨어 살면서 안빈낙도에 힘썼다.





관수루 옆 서쪽바위'욕기암' 동쪽바위는 '풍우대'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명예와 이익을 잊고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사는 유유자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매년 여름 '자연-인간-연극'을 주제로 국제 연극제가 열리며,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가 공존하는 상징이라 할 수있다.

모텔을 지나고 수승대에 관한 안내 글귀문이 세워져 있다.

너희들 무엇을 뜻하니? 거창사과...

닭의 장풀... 순간의 즐거움...

오전에 오지 않았던 비가 이제 조금씩 내리고 있다.

황산 전통한옥마을 안내판.

충 호, 구연서원 표지석.

가을에 수승대 트레킹길 을 탐방 할 예정.

넓은소와 이태바위.

능소화

유이태 사랑바위 안내문.

척수대.

물을 안고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노거수 왕버들나무.

535년된 보호수 은행나무.

보호수 안내문.

시멘 수중보.

현수교.

꽃중의 꽃

버스를 타고 함양 농월정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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