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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표암-탈해왕릉-숭신전-동천동 마애여래 입상1.

경주방면 여행 및 산행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2. 12. 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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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왕릉.

야간 마치고 제17호 태풍인 "타파'의, 영향권이 미치는 가운데 시간이 아쉬어 경주터미널 도착.

관광 안내소에서 자문을 구하고 경주지도 를 받는다.

고속 터미널 버스 정류장.

저 번에 못 둘러본곳 을 답사하려 70번 버스를 타고, 부호탕 정류장에서 하차 할 예정이다.

70 번 버스를 탑승한다.

시민교회[부호탕]버스 정류장에 하차한다.

석탈해왕릉 네거리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양산교 돌다리를 지난다.

소나무숲 일대.

경주 표암전경.[경북 기념물 제54호]

조동문.

경주이씨 시조인 이알평 경모비.

신라 6촌장이 이곳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신라건국을 의결.신라가 건국되었다.

경주이씨 이알평의 사당인 "악강묘"

문이 개방되어 들어서니 제관을 갖춘 분들이, 오늘 손님이 오신다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악강묘 내부에 경주이씨 시조의 신위를 모셔놓았다.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하여 명명.

2012년 9월7일 표암 마애선각화가 발견되었다[폄]

표암 선각화의 내용[폄]

표암아래 바위 위에 기념비석이 세우져 있다.

좌측에도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 쪽에는 당간지주,석재 부재등이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표암은 경주이씨혈맥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며,"화백" 이라는 민주정치제도의 발상지인 곳이다. [관리사]

국사를 결정할때 6부중 한사람이라도,이의를 제기하면 안건으로 채택치않은 만장일치제도를 확립하였고...[전사청]

이는 후일의 "화백제도"로 계승되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제기고]

3대 유리왕은 건국원훈인 알평공에게 이씨 성을 사성하니, 이로써 2천년 경주 이씨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굴뚝의 모습.

표암재.

넓은 마루위에 "상현당" 현판.

산앙문[내삼문]. 중간에 "신문 "이라는 한문이 쓰여있다.

다시 쪽문으로 해서 나간다.

표암 안내문과 산앙문 [외삼문]

표암 안내문.

산앙문.

소나무가 자리잡은 석탈해왕릉.

석씨 왕 중에 유일하게 왕릉이 전해지고 있지만...실제로 탈해왕의 능이 맞는지는 확인 할수 없다고 한다.

신라 제4 대왕인 탈해 이사금의 능.

탈해왕릉 안내문.

왕릉근처의 소나무.

석씨는 신라 8 왕이 재위했음에도 불구하고,탈해왕릉을 제외하고는 비정된 왕릉은 하나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석씨는 시조 탈해 이사금을 제외하고는, 사서에 장지 관련기록이 전혀 없다고 한다.[사적 제174호]

왕릉 주위의 축 쳐진 소나무.

산중턱의 경모비각과 광임대로 오르는 길.

백률사 가는 이정표.

돌계단을 오른다.

비석과 광림대.

경주이씨시조발상지 비석.

광림대 석혈 안내문.

광림대.

비각안의 석혈.    작은 욕조[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 으로 목욕을 한 곳] 초강지

유허비각.

작은 외삼문.

표암 유허비 안내문.

유허비.

내부 상량문 중수기 등 편액이 걸려있고...물고기가 모서리에 머리박혀있는 특이한 모습...

오색단청한 추마밑의 용.

경주 시가지와 표암.

다시 내려와 탈해왕릉 소나무 숲길을 거닐면서 숭신전 으로 이동.

숭신전 안내문.

숭신전 홍살문.

영녕문.

비석과 비각인 모우각.

"신라 석탈해왕 비명" 인 비석. 

영녕문 옆의 쪽문으로 들어오니,  서재인 상의재[접빈실]

동재인 상인재[참봉실]

경엄문.

숭신전.[신라 제 4 대왕이시며 경주 석씨의 시조이신, 석탈해왕을 기리고 제사를 모시는곳]

매년 춘분날이면,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향사를 올리고 있다.

제수음식을 준비하는곳. 전사청.[앞의 긴돌은 제사에 쓰일 소, 돼지, 양등을 검사하는 성생위]

정료대[예전에 관솔로 불을밝혀 제사를 지낸 조명시설]

이 건물은 후손분들이 거처하시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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