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의문은 닫혀있고 관리사의 집으로 해서 들어간다. 옥천서원의 종손 이상연씨에게 문의하고 관람한다.
옥천서원의 내력을 알려주는 안내문.
조선중기 "이사룡"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숙종18년[1692]성주목사와 관내의 사민들에의해, 그가 살았던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작촌마을에 충렬사로 처음 건립. 정조20년[1796]사액이 내려진다.그 후 충렬사는 옥천 충렬사,옥천서원으로 불려지다가 서원철폐령에 훼철 1919년 직계후손들의 집성촌이 되는 현 위치에서 중건하였다고 한다.
외삼문인 "행의문"
관리사의 집으로 해서 들어오고 나간다.
서원으로 가는 통로.
이사룡은본관은 성산 자는 사중으로, 조선중기의 무인으로서 인조18년[1640]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위해, 원병을 요청함으로 징발되어 동북 지방의 전투에 출전하여, 1641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은혜를 생각하며 전투에 임하며, 명군에게 공포를 쏘다가 발각되어 처형을 당하고,그 후 이사룡은 의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정조17년[1793]성주목사로 추종되고 정려가 내려진다.
옥천서원. 대들보 상단의 5개의 흰 표시는 상지로 임금이 사액을 내린 서원 이라는 뜻이다.
강당 인 "충의재"
곳곳에 걸려진 편액들.
육각형모양의 방문고리.
서원의 내력을 알려주는 현판문.
서원마루에서 망하는 명나라의 은혜, 떠 오르는 청나라의 위상 과연 무엇이 충이고 의리인지...
서재건물이 되어지는 "양현재".
동재건물이 되어지는 "현덕재"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되어지는 "상절문"
제향의 주인공 이사룡 선생님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 간단하게 묵도로써 경의를 표시하여 본다.
충렬사 편액.
서원의 뒷풍경.
가묘로 들어가는 또다른 "내삼문". 건물의 단청이 퇴색되었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중건되기 이전사당 역활을 했다는 "가묘"의 건물전경.
제기를 보관하는 새 건물.
새로 건립된 쪽문과 제기등을 보관하는 건물.
연륜이 오래된 배롱나무.
옥천서원 곳곳을 탐방 한다.
옥천서원과 오늘의 기숙사격인 동재 건물.
서재건물과 옥천서원.
용도는 굴뚝?
옥천서원 전경. 전학후묘의 배치방법을 취하고 있다. 여기도 고라니 한마리가 킬 되어 있다.
참고로 성주 태실로 가는 도중, 이사룡 의사의 유허비와 서당이 있어 옮겨본다. 인촌리 작촌마을의 "옥천서당"
인촌리 작촌마을의 이사룡 선생의 2기의 유허비.
대명 충신 조선 의사 성산 이공 유허비.
선돌모양의 유허비.[대명충신 조선의사 성산이공지유허]
대봉마을 옆 갓 모양의 봉긋한 태봉. 태종대왕 태실이 있어서 이동한다.
대봉2리 새마을 회관.
태종대왕 태실이 있는 태봉[136m]
태종대왕 태실은 1928년 성주에서 봉출되었고,이 후 1930년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태종태실이 있었던곳으로 추정되는 태봉에는, 개인 소유지로 지정되어 다수의 분묘들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