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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구강서원-봉산재-흥덕왕릉-육통 회화나무-근계리 영운사 입불상

경주방면 여행 및 산행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2. 12. 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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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 이제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구강서원"

 

안강시외 서부 터미널.

산대5리 마을 표지석.

안강 LH 아파트를 지나오고...

초록별 어린이집.

28번 호국로 밑 굴다리를 통과.

안강쪽 방향을 잠시 뒤돌아본다.

자옥산-도덕산-어래산  안강벌.

안강벌판이 좌우로 펼쳐지고,일직선인 농로따라 이동한다.

안강주위의 무릉산, 보갓이산, 마미산 일대.

구강1리 마를 버스 승강장.

양월1리 구강마을 안내문.

구강마을 전경.

구강서원이 대나무 숲에 살짝 덮여있다.

익재 선생의 영정을 숙종대왕으로 받아,구강서원을 세웠다고 해서 마을을 구강으로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다.

향나무와 비석.

계림부원군 문충공익재 이선생 숭묘비.

귀부.

귀부 뒷모습.

구강서원 안내문.

국사책에서 한번은 읽은적이 있는 익재 이제현 선생의 초상.

익재 이제현에 대하여

이제현은 고려후기의 시인 문신 성리학자 화가이다. 시호는 문충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검교정승 이진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연경궁녹사, 예문춘추관, 사헌부규정을 거쳐 1319년

충선왕의 초빙으로 원나라로 건너가 만권당에서 연구하였으며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간하여 1323년 석방되게 하였다.

1320년 단성익찬공신에 책록되었고 그뒤 밀직사, 정당문학, 삼사사등을 거쳐  계림부원군에 봉작되었고, 1357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기철등 친원파 암살사건을 중재하려다 실패하였다.

이후 사직하고 은퇴,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 저술에 몰두 하였다.

고려 후기의 유학자이자 초기 성리학자의 한사람이며 공민왕의 후궁 혜비 이씨의 친정아버지 였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와 조선의 사림파의 학문적 선조로서,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목은 이색은 그의

문하생 이었는데 후일 이색의 문하에서는 정도전 조준 남은 정몽주 길재로 학파가 나뉘게 된다.

그림과 서예에도 능하여 그림과 서예작도 남겼고, 평론서인 역옹패설등과 많은 산문 시문등을 남겼다.    백이정 권부의 문인이다.[폄]

외삼문인 종앙문. 문이 잠겨져 있고 관리사 건물도 문이 잠겨져 있어 내부를 탐방하지 못해 아쉽다.

구강서원 안내석.

이 안내석은 왜 제 자리를 찾지 못했을까

구강서원.

시도재.

묘우

문시묘.[익재선생의 위패와 영정이 모서져 있다]

시술재와 관리사.

주위는 향나무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문과 협문으로 연결.

시술재

멍멍이 혼자만 이 서원을 지키고 있다.

문이 잠겨 내부를 탐방할수 없어 아쉬운 구강서원 전경.[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양봉

안동권씨봉산재사 표지석.

봉산재사.

봉산재 안내문.

추원문.

봉산재사는 사정공 항일재 권수해를 봉사하는 재사이다.

사정재.

공성재.

댓돌아래의 하얀 고무신.

사정공 묘소. 단종 복위를 바라며, 이름없는 생육신으로 사시다가 향년 5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봉산재 내부.

좌우 문인석.

문인석.

거북이등의 용 석등?

새로 단장된 사정 항일재 권수해 묘소.

봉산재 전경.

안강방면의 쌍두봉?

모과.

젖소의 눈매.

흥덕왕릉 입구 버스 승강장.

흥덕왕릉 가는길.

흥덕왕릉 입구의 서원.

경주 흥덕왕릉 안내문.

흥덕왕릉 주위의 소나무.

소나무 군락지에서 한장.

흥덕왕릉을 지키는 소나무는 구불구불하고,뒤틀리고 굽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다수의 경주왕릉주위의 소나무는 이처럼 생겨 왕릉을 둘러싸고 있는데 "도래솔"소나무라 한다.

지금 한창 잔가지 를 제거하고 있다.

왕릉 입구임을 알려주는 두개의 화표석.

화표석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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