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암 선생의 '영송' 한시에 대한 일화 이야기, 도의 판결사인 양희가 해인사에 들렀는데 어린 내암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기특하게 여겨 운자를 띄워 글을 짓게 하였다. '영송' 시는 어린 정인홍이 학문을 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한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정인홍은 양희 맏사위가 된다.
경상우도의 내암 정인홍(1536~1623, 영의정)은 구한말 매천 황현1855~1910.9)에 의해 재평가된다. 이귀 김류 송시열 등 집권 서인(노론)들에 의해 '만고의 역적'으로 억울하게 폄하된지 무려 271년이 지나서다.
임진왜란때 창의하여 의병장이 되어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을 격파 하였다.
1618년 광해군 10년, 의정부 영의정에 임명 한다는 교지.
정인호의 안식처인 부음정.
정인홍과 합천에 남긴 자취.
내암집 6책.
의병운동의 선봉이 되다. 아래 문서는 유지(우찬성 재임시) 만력 36년 9월25일 1608년 광해군 즉위년.
정인홍의 삶(1536~1623) 자는 덕원, 호는 내암, 본관은 서산이다. 조선중기 문인으로 남명조식 선생의 수제자이다. 명종 13년(1588) 사마시에 합격 선조 5년(1572) 세 정승과 이조의 추천으로 황간 형감에 제수 되었다.
이듬해에는 최고의 목민관으로 보고되어, 사헌부 장령에 임명되었으며,산림 장령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인조반정(1623)이 일어나 '어머니를 폐위하고 동생을 죽인..' 죄를 뒤집어쓰고 도성에 불려 올라가 89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후일 순종 2년(1908) 황제의 명령으로 죄명을 씻고 영의정 직책을 회복한다.
시신은 문인 동계 정온 선생이 운구하여 상각사촌 선영에 매장하였고, 1924년 가야면 야천리 탑골 뒷산으로 이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다. 선생의 묘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 292호 지정되었다.
남명 조식 선생이 정인홍에게 내린 선물.
남명선생은 살아 생전에 방울을 차고 다니며 정신을 일깨우며,경의검 으로 혼미를 깨우쳤다 한다.
남명이 내암에게 물려준 칼 '경의검' 안에서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에서 결단하는 것은 '의'이다
만력 39년 2월 초 2일 (1611년 광해군 3년) 우찬성 정인홍에게 빨리 부임하기를 독촉하는 두번째 유지.
만력 22년 3월 27일 (1594년 선조 27년) 정인홍을 중훈대부 상주목사로 삼겠다는 교지.
정인홍의 생애.
내암 신도비.
사당입구 협문.
내암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청람사.
내암 정인홍 영정 및 위패.
아래 건물이 부음정.
부음정(孚飮亭)은 그가 45세가 되던 때 고향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다. 원래 가야시장 부근에 있었는데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관리사.
비비추.
아아치교.
정인홍 선생이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을 길러낸 부음정 전경.
가야천과 가야면 황산리 마을.
대장경 테마파크 주차장.
아아치형 철골다리.
굴다리를 지나 일단 팔만경 테마파크로 이동.
대장경 능소화 터널.
소화낭자의 혼이 담긴 능소화.
대장경 테마파크.
대장경 테마파크 전시장.
대장경 소망 빛 소공원.
소망 빛.
연못.
소리길 출발점 으로 이동.
각시교.
가야천 상류.
남산제일봉을 당겨본다.
황산1구마을, 해인사, 소리길 표지석과 소리길 입구.
가야산 소리길은 대장경 테마파크부터 해인사까지 약 7.2km로, 계곡과 소나무 숲길걸으며 계곡소리.새소리.바람소리.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수 있는 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