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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4)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5. 8. 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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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출산으로 생긴 태반을 묻은 곳을 '태봉,태장,태실,태묘라 부르며 관리를 해 오며, 세종대왕 왕자 태실지(사적 제444호)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에 있는데, 현존 태실 중 국내 최대 규모이다.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장자인 문종을 제외한 17왕자와, 세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있으며 세종 20~24년(14838~1442) 사이에 조성 되었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에 조금의 훼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조대왕 태실. 1438년 3월 10일 (세종 20) 장태.

세조가 계유정란으로 집권한 후 그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 형제들(금성대군, 안평대군,영풍군,화의군,한남군)태실을 파괴하고 자신의 태실 앞에 만 다시 커다란 가봉비를 세웠다. 앞은 태실은 파괴되고 비석도 없는  받침대만 남은 화의군 태실.

태봉은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할 경우에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가봉비를 세운것 으로 임금의 태실을 말한다. 세조의 가봉비와 ,     화의군 태실. 장태시기 미상(세조 즉위 후 파손)

계양군 태실. 1439년(세종 21) 5월 24일 장태.

의창군 태실. 1438년(세종 20) 3월 11일 장태.

한남군 태실. 1439년(세종 21) 5월 24일 장태 인데...파손상태. 19기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 나머지 5기는 비석도 사라지고 태실도 파손되고 받침대위에  새로 조성한 원돌만  횅하니 남았다.

밀성군 태실. 1439년(세종 21) 3월 8일 장태.

수춘군 태실. 1439년 (세종 21) 8월8일 장태.

의현군 태실. 1439년(세종 21) 8월8일 장태.

영풍군 태실. 장태시기 미상(세조 즉위 후 파손), 골육상쟁이라 해도 이렇게 파손할 필요가 있을까? 후대에서 재평가 할 역사의 사안인데...아마 세조는 두고 싶어도 밑의 신하들에 의해 어쩔수 없이 파손했겠지...

영해군 태실. 1439년(세종 21) 8월8일 장태.

담양군 태실. 1439년(세종 21) 5월 24일 장태.

왕자 당 태실. 1442년(세종 24) 10월 23일 장태.

원손(단종) 태실. 1441년 (세종 23) 윤 11월 26일 장태.

좌측으로 소헌왕후 소생 적손 대군들 태실 7기를 배치, 우측으로는 후궁들이 낳은 서손 군들의 태실 11기를 배치 하였다. 좌측 앞의 원손인 단종 태실이 세조와 극과극 자리에 배치된 상태이다.

영응대군 태실. 1439년(세종 21) 8월8일 장태.

평원대군 태실. 1439년(세종21) 5월 26일.

금성대군 태실. 장태시기 미상(세조 즉위 후 파손)

광평대군 태실. 1439년(세종21) 5월 24일 장태.

임영대군 태실. 1439년(세종21) 5월 29일 장태.

안평대군 태실. 장태시기 미상 (계유정난 후 파손)

이곳 태실지는 원래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의 묘자리였다는데...당시 왕실의 권위에 밀려서 다른곳으로 이장 

세종대왕 자 태실을 뒤로하면서 가지 많은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던데...어느 누구는 권력에 대한 야망, 어느 누구는 조용하게 살다가는 삶...어느 누구는 적장자대로 순서가 있는데 그에 대한 반기를 드는 삶...후일 죽을때 즈음에 부질없는 삶이라고 ...말했던가...

선석산 능선...  지관이 전국을 떠돌다 이곳 성주 선석산 정상 태봉바위에서 천하의 명당을 발견해 오늘까지...

선석산 등산로 안내도.  대경선을 타고  후일 북삼역이 개통되면 영암산으로 해서 선석산-누진산  가을산행 코스는 멋진 곳 이지요 

태실생태공원 내의  다리.

겹삼잎 국화.

청수좌골의 소나무 뿌리는 어마무시, 이곳과 비슷무레 하는데 새끼 소나무 뿌리 라 합시다.

선석사 입구의 굽어진 소나무.

선석사 입구의 2층 누각 인 천왕문.

전통사찰 선석산 안내문.

선석사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선석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현재의 위치보다 서쪽에 있었고 창건 시의 이름은 신광사였으나 고려 말 1361년(공민왕 10년) 주지 혜근스님이 새 절터를 닦으면서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와 ‘닦을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붙여 선석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천왕문 으로 들어서니 좌우 금색 연등이 걸려 있다.

벽화속의 광목천왕, 다문천왕.

지국천왕, 중장천왕.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후기 중창과 이건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소장하고 있으며 세종대왕 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다.

선석사 종무소.

멍멍이가 있는 요사채.

선석사 대웅전 안내문.

두 개의 석등이 대웅전을 밝혀준다.

석사모니불 좌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웅전에서 바라 본 2층 누각인 사천왕문.

정법료.   건물 일부는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던 선석사는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영조가 하사한 어필(御筆)을 보관하였던 어필각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하고 있다 .

명부전.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 지장탱화도 봉안.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뒤에 명부시황 탱화도 봉안.

판관 2구, 녹사 2구, 문 입구에 장군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을 갖추게 된다.

칠성각.

칠성도 2점,  오른쪽 칠성도는 중앙에 치성광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 월광보살, 칠성여래 7분을 그린 작품이다.

우측의 칠성도는 칠원성군 중 홀수에 해당하는 4위, 28수 중 홀수에 해당하는 14위, 태상노군, 상단 오른쪽 원 안에는 육성을 그린 작품이다. 좌측의 독성도.

산신각.

산신탱.

대웅전 뒤에 있는 석조미륵불좌상.

검안산 능선이 선석사를 감사주는 느낌이 든다.

고요한 풍경소리.

한켠의 부처님 두상과 소 부처상.

한국사찰의 미 굴뚝. 영산회 괘불탱이 보관중인 괘불전.

영산회 괘불전 편액.

보물 제1608 호 영산회 괘불탱.

1702년(숙종 28) 탁휘·법·설잠·성징 등이 제작된 괘불탱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있고,  화면의 상단에는 아난과 가섭, 2명의 제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상반신만 표현되었다. 좌우협시는 본존불보다 한 발짝 앞서 겹쳐 표현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 석가여래의 수인은 통상의 항마촉지인이나 설법인이 아닌 오른손을 어깨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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