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귀족들의 묘역으로 쪽샘지구로 불리며,적석목곽분 등 여러 형태의 고분150여기가 확인되고 수천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팔우정 유허비.
경주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변에 자리잡은 황오동 고분군.
황오동 고분군 안내문.
황오동 고분군 [쪽샘지구] 사적 제 512호.
한옥을 헐어내고 주위를 정비하고, 70여기의 고분을 복원해 고분공원으로, 탈바꿈 하였다.
고분공원의 복원된 우물과, 일부 민간가옥이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 44호고분 쪽샘유적 발굴관.
제44호 고분 현장과 발굴과정 공개[폄].
한창 발굴 정리중이다.
쪽샘지구 발굴조사 안내도.
문화재 발굴 조사 중...
펜스를 설치하고 발굴을 하고 있다.
가을 코스모스 향연.
대능원 담장의 "연인들의 사랑고백" 시.
대릉원 가는 길목바닥에 역대 신라왕들의 계보가 설치.
신라 제7대 왕 일성 이사금 계보.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
천년 왕국 신라56왕 계보.
대릉원 안내도.
대릉원 일대 안내문.
대능원의 구성은 미추왕릉,황남대총,천마총 외 여러개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입장료[3000원]를 끊고, 대능원 정문으로 들어선다.
한 가족 분들의 탐방객.
노거수.
군데군데 고적발굴지 비석이 서 있다.
미추왕릉 가는 삼문.
경주 미추왕릉 안내문.
신라 최초의 김씨임금이 되었고, 김알지의 7대손 이고 갈문왕의 아들이다.
왕릉앞의 상석, 사적 제175호 지정. 대능원에서 잘 정비 보존상태이다
미추왕릉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유례왕때 청도 이서고국 에서 침입. 신라에서 막을수 없자 귀에 댓잎을 달고, 신라군가 싸워 물리치고 그들이 간 곳이 사라지자 미추왕릉 앞에 댓잎이 수복히 싸여 있어,미추왕이 죽어 비밀스러운 병사로 도와준것이라 하였다. 한 편으로는 김유신 장군의 후손이 억울하게 죽자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미추왕릉 앞에서 3번이나 신라를 떠나려하자 ,허락하지않아 사라졌다 하기도 하였다.
고분을 벌초하여 마대자루에 담아 놓은 상태.
석물자재 주춧들.
자그마한 고분도 있다.
젊은 연인들이 추억의 장을 담는다.
원형봉토분.
추석을 맞이하기전 고분군 마다 깨끗히 벌초된 상태.
능과 능사이의 의자에 한가로이, 안내 도우미 할머니가 휴식을 취한 모습도 보인다.
분재형 멋드러진 소나무.
가을하늘과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망자의 안식처...
대나무를 심은 이유는 이서국 군사을 물리친 의문의 죽엽 군사 때문인지...
식수대가 있는 중앙의 광장.
황남대총 안내문.
황남대총 발굴비.
메롱나무 뒷편의 황남대총.
돌이 테두리되어 연못이 형성 되어있다.
천마와 함께 날자.
신라 최대의 규모인 황남대총은,남분 북분 이 명명된 두 개의 고분이 서로 붙여 있는 표주박 형태의 모습이다.
연못의 가운데 한떨기 연꽃이 피어 오른상태
연못과 함께 운치있는 황남대총.남분은 60세 정도의 피장자 유골발견 북분은 부인대라는 글귀가 쓰인 은제허리띠 발견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
잉어떼의 유영.
천마총 발굴비.
천마총.
천마총 안내문.
천마총 입구.
천마총의 피장자는 소지마립간,지증왕으로 추증될뿐 어느 왕인지 확실하게 밝혀 진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