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조형물. 신라 흥덕왕 때 손순의 부부가 효심이 지극하여, 그의 어머니께 드릴 고기 반찬을 그의 자식이 받아 먹음으로 부모는 한번 가면,다시 오지 않고 자식은 낳으면 된다는 생각으로,자식을 산으로 묻으러갔을때 구덩이를 파니 석종을 하나 얻었다.
하늘의 뜻이라 하고 아이를 묻지않고 집으로 돌아와,석종을 매달아 두둘겼드니 그 소리가 왕궁에 까지 들리게 되었다.
종의 연유를 알게 된 흥덕왕은 손순의 효성에 감동하여,집 한 채와 해마다 쌀 50섬을 하사 하였다고 한다.
경주손순유허 안내문. 예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효행이 수록 되었다.
손순유허비각[경상북도 기념물 제155호]
신라효자문효공손순유허비
지금의 비석은 1970년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유허비 뒷면.
월성손씨 세번공파 종중에서 문효사와 유허비각 일대를 관리한다.
조선말기의 학자 성재 허전이 지은 유허비가 있었는데,근래에 와서 파괴 되었다고 한다.
보호수인 350년 회화나무.
팽나무도 보호수로 지정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식수기념비.
다시 나오니 담장밑에 작은 해태상이 ...?
호우당 종택 표지석이 보이길래...
쪽문으로 들어선다.
종가음식 전수관.
효우당, 충훈고택, 안채, 서씨 종가댁의 사당이라 한다.
늦가을의 꽃의 향취에 취해본다.
화단속의 가을향기.
손씨의 시조 손순[문효공] 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효사.
유허비각
소현1리 마을회관.
경주에서 보면 마을이 조그마하게 보인다하여 소현마을
삼국유사에 의하면 손순은 경주 모량 사람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유허지와는 너무 떨어져 있는데...
신라의 효자 손순을 모티브로 한 타일벽화
동학교주 최제우 타일벽화.
최제우와 최시형 벽화 안내문.
타일벽화는 경주동국대학교 김호연 교수님이 직접 그리고 제자 김선희가 가마에서 구웠다 한다.
타일벽화에 경주의 문화재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자세히 살펴보면,어떤 내용인지 알수있고 간단한 설명도 적혀있다.
소현천을 따라 내려간다. KTX 고속전철 교량.
가을 수확을 거두는 농심.
지일교.
소현천에서 수렵을 즐기는 아저씨들.
작은 고기는 방생 하시고, 오늘 매운탕꺼리 많이 잡으세요.
백로의 비상.
오류리 버스 정류장.
정류장안의 경주오류리 등나무 안내도.
오목골교.
오류1리 마을 안내문.
오류1리마을회관.
오류리 등나무[천연 기념물 제89호]
애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오류리 등나무 안내문.
신라시대에 임금이 사냥을 즐겼던 숲이 있어 용림 이라 불렸고, 등나무 줄기의 꼬임과 그 위엄을 용에 비겨 용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 용림에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등나무와 팽나무 그리고 연못에 얽힌 전설이 있다.
근처의 마을 한 농부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자매는 옆집 총각을 사모하게 되었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옆집 총각은 전장으로 가게 되었다. 총각이 전쟁중에 전사하였다는 소식에 절망한 자매는 함께 연못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서 등나무 두 그루가 자랐다고 한다. 얼마 후 죽은 줄 알았던 옆집 총각이 휼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와 자매의 사연을 듣고, 총각 또한 연못에 스스로 빠져 죽으니, 그곳에 팽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자매의 등나무와 총각의 팽나무는 서로 엉켜서 자라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뻗어져나간 등나무의 줄기들.
같은 덩굴식물인 갈[칡]을 등나무와 엮어서 "갈등"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나.
모두 4그루이며 팽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엉켜있으며,팽나무의 고사위기로 강제로 분리 지지대를 설치했다.
"사랑에 취함" 등나무의 꽃말이 이 전설에서 유래 했는가?
신혼부부의 금침에 등꽃을 따서 말린것을 넣어주면,정이 한층 더 깊어진다는 말이 있고,
부부관게가 원만하지 못할 때 등나무의 잎을 달여 마시면 정이 다시 살아난다는 속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