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간을 받치는 받침돌을 거북이 형태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여지껏 경주 당간지주를 탐방했지만, 받침돌이 있는것은 처음 본다]
황룡사 기념관이 보이고, 허허 벌판에 자리잡고 서 있다.
분황사의 것으로 보이는, 당간지주는 조각없는 간결한 모습이다.
거북받침돌이 있는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분황사 안내문.
분황사 종합안내도.
원효가 다녀간 그 길위에 서다.
초등학교 경주 수학여행시 탐방보고, 오랜만에 입장료 1300원내고 분황사 탐방한다.
오색연등이 모전전탑주위로 걸려있다. 모전석탑은 "결이 일정한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고 탑을 쌓은 석탑이다.
석탑 모서리 마다 탑을 지키는 석사자의 위용.
모전석탑 안내문.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1층탑신 사면에는 각각 감실을 만들고,문비를 달았는데 감실 속에는 불상이 있었던것으로, 추정 되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문 좌우에는 인왕상이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 매우 동적인 사실감으로 조각되어 있다.
원효대사가 마지막으로 분황사에서 열반 하셨다.
자장율사가 계셨던곳 에서 인증샷
자연석 기단위에는 네마리의 석사자가 배치되어있다.
어찌 물개모양처럼 비치는지...
각 사면에 감실 안쪽의 불법을 지키는 인왕상이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다.
북문의 인왕상
3층인 전탑을 원래의 9층으로 가상복원한 그림모습.
대종각.
종신에 새겨진 비천상.
종신에 새겨진 연꽃무늬.
1인1타 1000원을 자비함에 시주하고 종을 쳐본다. 뎅-------
원효대사는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금광명경소"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원효대사가 열반후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때 까지 공경 하였다고 한다.
복대화상과 동자승.
지대석에 좌정하신 부처님.
가을날의 분황사 모전석탑 전경.
보광전. 분황사의 대웅전 구실을 하고있는 전각이다.
보광전에 모서진 약사여래입상 인내문.
금동약사여래입상[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19호]
약호를 들고 계시는 금동약사여래입상.
원효대사 진영.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은 신화로 일컬어 졌다는데 행방은 ...일본놈이 가져 갔겠지...
요사채.
마당 한켠의 광배의 부처님상.
불도가 깊으면...안내문.
대원심보살 사리함. 1860년에 태어나 1935년 열반.치아에서 백옥사리가 나와 경탄하여 그 불도정신을 기리고자 이곳에 모셨다 하네요.
석정[우물] 안내문.
석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
삼룡변어정[우물]의전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에는 청지.동지, 분황사에 한 마리씩 호국용이 살았는데 원성왕11년[795년] 당나라 사신이 용을 세마리 물고기로,변신시킨 뒤 잡아서 길을 떠났다. 하루 뒤에 두 여인이 원성왕 앞에 나타나서 사실대로 아뢰니 왕이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쫒아가서,
되찾아 세 곳에 놓아주어 살게 하였다.그 뒤부터 이 우물은 삼룡변어정이라 하였다. 남아있는 신라 우물중 가장크고 우수한 것이다.
석정과 약수터.
화쟁국사비부 안내문.
화쟁국사비부[경북 유형문화재 제97호]
원효대사의 비석을 받치는 비대석으로 비는 없어지고,추사 김정희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국화 꽃송이와 향로.
동편에 비석이 서 있고...
석등과 대석같은 많은 초석들이 즐비한 석재들.
분황사 석조가 아닐까[물수조]
분황사의 가을은 깊어가고...
홍엽에 물든 낙엽만 사찰 내 수북히 싸여있다.
오늘도 수호신 역활을 하는 석사자 상.
분황사 표지석.[향기로운 임금의 절, 선덕여왕 3년에 창건]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분황사.
근처 식당에서 모처럼 삼겹살과 반주 한잔하고 나오니, 어둠이 내려 분황사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오늘 하루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