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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면 옥성리 의열각-독립지사 우초 선생 공적비-해동청풍비4

자전거라이딩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2. 11. 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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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보듬마을 안내문.

성주참외 체험형 테마공원.

성주ic 교차로를 지나 대가면으로 들어선다.

포천계곡 가는길.

옥성리 의열각.

일제에 저항하다 순국한 이경환 의사와 그의 부인 성산배씨 충절을 기리기 위한 부부  의열각 안내문.

순국의사 이경환 선생 사적비.

의열각.

내부에 비석은 없고 정려편액이 걸려 있다.

한국 침략의 부당성과,조선총독부 철폐를 요구하려는 직소장을 일본 천황에게 제출하려다 영어의 몸이되어,옥고를 치르야 했다.

이경환 의사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대가면사무소.

대가면 흥산리 소재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공적비.

독립지사 우초 백성흠 선생 공적비 안내문.

사재를 털어 탕곡서숙을 개설 교육사업에 힘쓰고,성주장날 독립만세 운동에 적극참여 주모자로 체포 옥고를 치르고 독립자금 조달에도 힘썼다.

애국지사 우초수원백공사적비.

개옹장선생충의 기념비와 해동청풍비 입구.

충의 기념비와 해동청풍비각.

담장이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에 선열의 충의기적비가  위치 해 있다.

개옹 장선생 충의 기적비.

해동청풍비 안내문.

절의를 지키다 순절한 자하 장기석 의사를 기리기 위하여,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기념비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협문을 지나니 두개의 비석이 있다.

해동청풍비와 박 유인 기열비.

유림사회에서 장의사의 절의를 기리기위해, 백이숙제 백세청풍비를 모방하여 1936년 해동청풍이란 글자만 새겨 고향인 자양산 밑에 세웠다.

1937년 4월 일본경찰이 석공을 대동하여 비석을 파괴 근처 냇가에 버리고 간것을 해방후인 1946년 비편을 모아 쇳조각으로 이어 해동청풍비를 다시 세웠다. 

빗돌 뒷면에는 수습복원 경위를 심산 김창숙이 짓고,백범 김구가 쓴 비문을 새겼다. [높이 320cm. 넓이 110cm. 두께45cm]

박씨부인의 충렬을 기리고자, 그 옆에 위당 정인보의 글로 "박씨부인 기열비"를 세웠다. 일제가 비를 파괴하려하자  부인은 죽음으로써 저항 하였다.

구미시 오태동에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린 지주 중류비와 비슷함을 느낀다.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에 위치한, 자하 장기석 해동청풍비각 "내 목은 베어도 내 뜻을 꺽을수 없다." 곡기를 끊은지 27일만에 대구 형무소에서 향년 51세로 순국.

배꽃.

다시 성주 성산교를 지난다.

이천제방

월항면 방면으로 이동.

삼봉서원 가는길.

한개마을.

참외를 든 성주 사나이 .

낙조.

마지막 여운을 남기며 넘어간다.

낙동강 자전거 길로 들어선다.

저녁노을의 낙동강

가야산도 줌으로 댕긴다.

쉼터의 벚꽃나무.

벚꽃 터널.

강정고령보.

아파트 입구의 동백꽃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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