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청도문화관광 스템프투어(9)

문화관광 스템프 투어.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5. 11. 3. 15:58

본문

운문사 동 서 삼층석탑은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높이 5.4m. 대웅보전 앞에 동 서로 건립된 2중기단 위의 3층석탑 이다.

서 삼층석탑,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중석을 한데 붙여서 짰고, 중석에는 각 면에 우주(모서리기둥)와 탱주(받침기둥) 2주씩이 있다.

  기단부에는 기단 면석에는 팔부신중을 양각하였는데 모두 앉아 있는 자세로 머리 부분을 크게 묘사하였으며 세련된 조각수법이다.

 

갑석은 넓어서 안정되어 보이고, 상면에는 경미한 경사가 있으며 중심에 각형과 호형의 받침이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각 면 1석씩으로 짜고, 각 면은 탱주로 양분한 다음 8부중상1구씩을 조각하였는데 조각수법은 우수한 편이다.

세련되고 정교한 조각수법.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안내문.

동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으로 보물 제 678호로 지정.서탑과 규모와 양식이 동일하다 탑의 높이는 591cm

기단부 각각에 팔부신중을 양각하였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고 옥신석에는 모서리에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층 5단씩의 받침 층단을 새겼고 추녀 밑이 수평을 이룬다.

작압 안내문.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운문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작압전 내의 석조 석가여래좌상.

운문사 석조 석가여래좌상 안내문.

보물 제317호 석조여래좌상과, 보물 제318호 사천왕 석주를 봉안 하고 있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 안내문.

관음전.

관세음보살은 일체중생들을 고통에서 건져 즐거움을 주겠노라 서원을 세운 대자대비의 상징이다. 운문사 관음전에는 1816년에 제작한 수월관음도가 후불탱화로, 1871년에 제작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어느새 홍엽으로 물들어지고 늦가을의 운취를 느껴본다.

명부전.

지옥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과 십 대왕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므로 지장전이라고 하기도 하며, 십 대왕을 모신 전각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명부전이라는 명칭은 지장보살과 시왕이 머무르는 곳이 저승세계 즉 명부이므로 이런 명칭을 사용한다.

십 대왕은 저승을 관장하는 열 명의 대왕으로 진광 대왕, 초강 대왕, 송제 대왕, 오관 대왕, 염라 대왕, 변성 대왕, 태산 대왕, 평등 대왕, 도시 대왕, 전륜 대왕 등을 일컫는다. 망자가 저승에 다다르면 이들 열 명의 대왕에게 심판을 받아 각각의 업식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돌을 서로 각지게 구성한 담장.

만세루. 신라 원광국사가 초창하고, 고려의 보양국사가 중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105년 원응국사가 3차 중창할 때 지었다.

한켠의 범종.

큰 법회시에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대중들이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2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누각으로 조성하였다. 건물의 사면을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마음 '심'자를 그리며 법고를 두드린다고 한다.

소망담은 글귀들.

칠성각.

독성(나반존자), 칠성, 산신 등 세 성현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전각이다.

독성이라는 불교적 성현 외에도 칠성·산신과 같은 전통신앙의 대상을 불교로 흡수하여 불교가 가진 원융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아니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이름한다.

스님들의 수행공간.

운문사 비각, 중앙이 원응국사비 이다.

설송대사 갈명 (1754년 건립).

탑부재와 부도1기.

원응국사비 안내문.

원응 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고려 시대의 석비. 비의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과 머릿돌은 소실되었고, 세 쪽으로 잘린 비 몸만 복원되어 다. 원응 국사가 입적한 해인 고려 인종 22년(1144)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탄연스님이 쓴 원응국사비는 높이 2.3m 폭 0.9m 크기로 비석머리와 받침돌이 없어진 상태에서 비신도 3편으로 절단되었던것을 연결 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316호 원응국사비 표지석.

비각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 의하면 비각이 무너졌으나 다시 복구할 여력이 되지 않자 관찰사가 탄식하면서 비용을 보태주어 1877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3년 새로 고쳐지었다.

운문사 중수기념비.

응진전과 조영당.

석가모니불과 협시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와 16나한상.

응진전 16나한상.

화랑오성계.

대웅보전.

범종루.

복호산 암벽지대.

복호산 암벽아래의 북대암을 댕겨본다.

자비무적.

운문사를 나서며.

야외의 부처님.

자웅상의, 암수 서로 정다워라...

대한불교조계종 호거산운문사 중수공적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