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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조영동 고분군-마위지 못-경산 병영 유적(압량면 압량리. 내리. 진량면 선호리)-고적리 고분군-임당동 고분군(1)

문화재 탐방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4. 8. 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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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위지못, 김유신 장군상.

영남대역 에서 하차.

경산 임당군과 조영동 고분군 안내표.

경산 조영동 고분군.

경산 조영동 고분군 안내문.

경산시 영남대학교 북측 구릉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6기의 대형 봉토분 으로 구성.

고분군 옆 커피샆.

어린왕자.

어린왕자와 사막의 여우.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고분군 주위 예초작업 안내문.

임당군 구릉에 분포하는 고분들 가운데 중앙부인 "성말괭이"라 부르는  곳에 위치한 봉토분 이다.

벌판뒤로 초례봉과 장군산이 펼쳐져 있고, 고속전철이 가로 지른다.

마침 KTX 고속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2기의 고분군도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고분군 서편에 분포하는 경산임당동고분군과의 통합 관리의 필요성으로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慶山 林堂洞과 造永洞 古墳群)’으로 재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1987년 주변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주변과 함께 모두 발굴 하였다.

묘제도 암반을 굴착하고 그 안에 나무덧널을 설치한 것이 주류이나 돌방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도 함 께 확인 되었다.

무덤의 규모, 묘곽의 배치 방식 등은 모두 경산임당동고분군과 비슷하다.

고분군 주위의 산책로.

 피장자들은 금동제의 관과 관식, 은제 관식,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곱구슬을 매단 유리목걸이, 금제나 은제의 반지와 팔찌, 금동제 신발 등의 회려한 장신구와 금동장이나 은장의 큰칼 등을 차고 있었다.

고분군에서는 이외에도 각종의 마구류, 무기류, 철공구류, 토기류 등 수천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피장자는 4∼6세기에 걸쳐 경산 지역의 지배 집단의 역할을 한 인물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이전에 이곳에  존재하였던 압독국 또는 압량소국 이 신라에 병합된 후 지방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 구역내의 경자금지 현수막.

압량읍 행정복지센터.

헌령 이후헌 소 청덕선정비.

능소화.

경산 마위지 근린공원.

김유신 장군이 인근 군사훈련장의 기마훈련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막아서 조성한 마위지.

주변에 김유신장군에 대한 탄생과  생활, 업적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

중악산(팔공산) 석굴과 난승의 보검.

김유신과 호국 삼신.

부적리와 마위지의 지명 유래.

김유신의 명예와 의무.

천년의 미소.

마위지 앞의 김유신 장군상.

김유신 장군상.

장군상 뒷편으로 6개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좌측의 3개소.

김유신의 탄생.

용화향도 김유신.

애마의 목을 친 김유신과 천관녀의 유명한 일화.

                      반월성 넘어 천년이 지고 신라의 핏덩이 노을되어 불꽃되어 

                  광야로 유신의 검은 번뜩이고 천관녀 문설주가 서럽구나 !

우측의 3개소 안내판.

황산벌 전투.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다.

마위지 축조 안내문.

 서기 642년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부임한 후, 당시 압량 소재를 중심으로 3곳에 연무 훈련장을 축조 하였다. 현존하는 마위지는 기마 연무장에서, 훈련한 기마를 위하여 인위적 으로 말을 위한  저수지를 축조 하였던 것을 일대의 아낙들이, 저녁에 말을 이끌고 와 귀를 씻어 주며 남편과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하여 이를 마위지 라 불리기도 한다.   

김유신 장군상.

주위의 봉분 인위적으로 조성 하지 않았나...

산책하기 좋은 마위지 근린공원.

정자쉼터.

사각형 정자로 이동.

넓고 사각형 모습의 정자.

이름도 없어... 마위정 이면 어떨까...

수변 으로의 테크로드.

가물어서 폭포수도 사용중지...

마위 근린공원 종합 안내판.

"압독국"은 삼한시대의 소국 중 한곳으로, 경산시 압량읍 일대에 위치 했었다. 이 작은 나라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에 신라에 정복되어 압독주가 되었다. 신라 진덕여왕 때 김유신 장군을 이곳의 군주로 삼았다. 압독국이 있었던 이곳에서는 많은 고인돌과 대형 고분군들이 발견 되었다. (임당동,조영동,부적군)

두개의 정자가 마주보고 있다.

구름다리. 김유신 장군이 병영을 했다는 유적지 3개소로 이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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