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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진평왕릉-효공왕릉-선덕여왕릉-중생사2.

경주방면 여행 및 산행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3. 8. 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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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황복사는 의상대사가 출가한 절이고,이 석탑은 신문왕의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위해 세웠다고 한다. 신문왕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아들이다.

통일 신라시대 초기 석탑의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어   국보 제 37호로 지정.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들은 육중한 몸매의 탑인 반면에, 불필요한 군살을 뺀 모습의 황복사지 삼층석탑,균형미와 건강미를 갖춘 석가탑, 변화과정에 한자리를 찾지 하였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불국사 석가탑, 균형감, 안정감, 비례감이 뛰어난 석가탑은 앞 시대의 석탑들이 있어기에 재 탄생 한것이다.

황복사지 절터 수풀사이로 2기의 커다란 돌이 보이기에...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서 탐방을 해 본다.

비석을 받치는 파손된 귀부 이다.

연꽃무늬의 파손된 2기의 귀부.

지대석,기단석,몸돌등이 반듯하며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이 있다.

건너편 나무숲 사이의 진평왕릉을 댕겨본다.

보문 벌판을 사이에 두고 진평왕릉과 마주하고 있다.

황복사지는 아직도 발굴 중이다.

신라 캘러리.

황복사지 옆 연못속의 부들.

달개비.

부레옥잠.

메꽃.

진평왕릉 초입의 오래된 느티나무 군락지.

거대한 노거수.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신라 제 26대 진평왕릉.

왕릉주위의 무릇꽃

진평왕릉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의 "꼭 보아야 할 경주의 보물 세가지 중 하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왕릉 으로써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화한 진평왕릉.

상석과 향로석, 두개의 표지석.

경주 진평왕릉 안내문.

저 멀리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댕겨본다.

사색하며 필링 하기에 좋은 수목공간.

왕릉은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렸고,둘레돌을 자연석으로 사용 하였으나 몇 개 만 남아있다.

능을 지키고 있는 고목 때문에 가을에는 단풍명소가 된다고 한다.

아무 카폐의 사진 한장.

배롱나무, 하얀 백일홍.

배롱나무, 붉은 백일홍.

진평재 앞의 조형물.

진평재.

아무카폐.

보문선원.

서울 탑골공원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재현한, 10층 8각석탑과 대웅전 전경.

포대화상과 부처님.

대웅전.

대웅전 내의 삼존불.

산신각 - 대부분의 절에서는 목조전각인데 이곳에는 석조전각이다.

주지스님이신 대허스님이 미리 세운 자신의 부도탑.

대웅전 전경.

보명 다보탑 안내문.

보명 다보탑.

능소화.

보문마을 회관 앞의 당간지주 석조 안내도.

전 홍유후 설총 묘.

전 홍유후 설총 묘 안내문.

상석과 비석이 묘앞에 설치.

1300년 넘게 묘의 주인을 모르고 있다가 인근 마을에,한 노인의 꿈에 나타난 것을 계기로 경주 순창 설씨 문중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홍유후설선생위총지묘.

신분은 육두품 출신으로 추측되며, 관직은 한림에 이르렀다. 설총은 경사에 박학하였고, 이두의 정리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화왕계를 지었다.

무궁화.

학문적 업적이 인정되어 고려시대인 1022년(현종 13)에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를 추증 받았고 문묘에 최치원과 함께 배향되었으며, 또 조선 중기인 1623년(광해군 원년)에 경주서악서원에 제향되었다. 

탐스런 박.

분묘둘레 외곽에는 철책이 둘러 있다.

도리깨를 치는 할머니.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안내문.

보문동 절터에 남아있는 연화문 당간지주.

 지주 윗부분에 네모난 틀을 두고 그 안에 연꽃잎을 새겨 놓고 있다. 

이런 형태의 당간지주는 다른 사찰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보문사 절터에는 현재 2개의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별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추정.

지주 윗부분의 네모난 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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