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다산 노곡리바람의 언덕-용암대명마을[대명단-풍천재-서학장군묘소]2

자전거라이딩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3. 8. 2. 10:44

본문

대명단이 있는 마을뒷편 군성산으로 이동한다.

임진왜란 때 지원군으로 파병되었다가, 종전이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머물려 산, 명나라 절강성 사람인 시문용과 서학을 기리는 풍천재가 있는 문명1리 대명마을 의 모습.

이들은 조선에서 은거하며 절강시씨와 절강 서씨 시조가 된다.  학생절강서공위세환지묘, 합장묘가 나타난다.

군성산으로 오르는데 잡목과 소나무지대를 지난다.

대명단 팻말이 보인다.

대명단 제단.

'달마다 초하루 보름이면 (시문용과 서학이) 북쪽 명나라 을 향하여 절을 한' 대명단 제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남의 나라 외진 산 속에 살면서 두고 온 고국을 한없이 그리워했을 시문용과 서학 (인조 14)에는 청이 조선에 살고 있는 명나라 장수들을 잡아 보내라고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시문용은 외진 골짜기를 찾아 더욱 깊이 은거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성주 용암 대명마을인 것이다.

갓버섯.

군성산은 나즈막하고 대명단을 보고 풍천제로 내려간다.

묘소가 나타난다.

대나무 숲이 보이고 물탱크가 숲에 자리잡고 있다.

대나무 숲을 내려간다.

풍천재.

풍천재 안내표가있고 서학 시문용의 유허비 두기가 서 있다.

표지석에 풍천재...한문이 새겨져 있다.

서학 유허비.

용의문양이 있는 이수.

귀부.

시문용의 유허비.

용의문양인 이수.

귀부.

1835년 순조 35년 서학과 시문용을 기리는 유허비가 풍천재 입구에 나란히 세워졌다.

풍천재는 중국 명나라 절강성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파병되었다가 귀화한 서학과 시문용을 추모하여 1834년(순조 34) 사림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배롱나무 두 그루.

풍천재 편액, 건물은 용암면 문명리 대명동의 마을 뒤편 산기슭 아래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대청 3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온돌방 앞에 툇마루를 두어 대청과 서로 통하게 하였다. 

풍천재기 편액.

명나라 말기 삼황제의 기일 편액.

각종 편액들.

황명만력 정유...

편액들.

편액들.

거대한 편액들.

아직까지 문화재로는 등록되지 않았다 한다.

풍천재 뒷면.

세그루의 배롱나무와 풍천재.

뒷면에서 바라본 비석.

임진년때 조선을 도와준 두분의 명나라 장수들에게 깊은 읍을 하며 풍천재를 떠난다.

대명마을.

나라사랑 무궁화꽃.

서학의 후손들인 절강 서씨는 여전히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지만 함께 살던 절강 시씨들은 현재 마을에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다.

 돌담위의 나무와 대명정 정자.

대명정.

서학장군 묘소가는 길.

대명마을 뒤 군성산 .

대명지.

개축사.

무성한 잡풀사이를 지나 한참을 오르니  산 언덕위 묘소가 보인다.

서학장군 묘소.

망주석과 비가있는 서학장군 묘소.

사각 비문과  무인상.

다시 묘소를 참배하고.

장군 묘소밑에 1기의 묘소가 있고...

위 상부에도 묘소 1기가 자리잡고 있다.

비문.

독특한 무인상. 아마 명나라 장수모습이 아닐까?

아래 절강 서씨 후손들의 묘소.

다시 대명마을로 와서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비닐 하우스동 너머 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대명마을.

증축된 성주대교는 아직도 미개통 상태.

성주대교를 지나 봉촌마을 재방으로 라이딩, 봉촌마을 연꽃단지.

봉촌쉼터.

낙동강 자전거길.

칡꽃.

강정고령보.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