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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계 제7구간[곡돌내재-갈고개-대왕산-잉어재]2.

경산시 시계산행.

by 영구[영원한 친구] 2023. 7. 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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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산 마루석.

다시 밧줄을 잡고 수목사이로 헤치며 오른다.

갓버섯.

밋밋한 산행길이라 별다른 것은 없지만,한번씩 가지많은 나무를 대한다.

잠시후 대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전적비와 대왕산 마루석.

산세는 겸손하고 주변봉우리와, 연결된 능선도 완만하고 부드럽다.

해발 641m 의 산이지만  주변의 높은 봉우리를 제치고, 큰 임금[대왕]을 뜻하는 이름을 얻었다.

 예전에 금천사람들이 큰 가뭄이 들면, 대왕산에 올라 산신에게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무속신앙에 산신이 대왕의 별칭일 가능성이 높다한다.


  <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유래    >
1944년 7월에 29명이  일제의 징용과 징병에 저항하기 위해 경산시 남산면에 소재한 대왕산 정상에 진지를 구축한 후 죽창으로 무장하고 의거대를 조직해 일제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 7월 26과 8월 5일 두차례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무장한 일본 경찰 30여명과 죽창과 투석으로 맞서 싸웠음.  1944년 8월 10일경 식량 조달을 하기 위해 산을 내려 왔다가 모두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옥중 생활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 풀려 나게 됨. 현재 전적지는 원형대로 보존돼 있으며 의거에 참가한 29명에겐 애국.애족장이 수여 됐으며 현재 생존자는 없음. 이를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에 추모비를 건립
 2013년 5월 사업비 29백만원(국비 20, 시비 9) 으로 29명의 공적비를 제막해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유족회가 관리하고 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예우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폄]

산허리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7개의 절터와,정상에 봉수대도 있었고 항일죽창의거 활동지, 대왕산은 현지사람들에게는 역사와 생활의 중심지 였던 모양이다.

대왕산 정상의 봉수대의 흔적.

지금은 세월의 흔적만 남아있고, 산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작은 대왕산?

641m 삼각점봉.

학일산 잉어재 갈림길. 학일산 표기가 잘못되어 우측으로  되어야 한다.

비슬지맥 641.2m 삼각점 표지판.선답자들의 표지기 옆에 새로 하나 달고...

641봉에서 

큰골산,천주산 학일봉가는 안내표.

세갈래 분기점에서 표지기를 달고 이동한다.

너 짱구 아니니?

사람리 갈림길 이정표.

추석연휴 임도에서 휴식을 즐기고 계시며, 요쿠루트와 단감을 주신다.

이곳이 벗고개 이기도 하다.

비슬지맥 벗고개 안내표.

다시 밧줄을 잡고 오른다.

산정상에 바위군이 자리잡고 있다.[520.0m]

비슬지맥 520.0.m 안내표.

멀리 선의산 이 조망된다.

준희님의 격려말씀 안내표.

반가운 표지기도 보이네요.

낙엽싸인 등로를 헤쳐가며...

쓰러진 나무를 우회하고...

무슨 용도의 물건이지? 양봉통 저장고?

488m 삼각점봉에서 가기전, 임도로 내려와서 올라갈 예정.

임도.

임도따라 이동한다.

사림지.

임도에서 벗어나  송전철탑위의 488봉을 포기하고, 우측 숲길로 이동.

숲길따라 걸으며 우측의 아래 도로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멀리 송백지,신방2지,잉어지 3개의 저수지가 보인다.

선의산 가는 이정표.

오늘 산행은 이곳 이정표에서 끝난다.

경산시 표지판  잉어재.

청도군 표지판.  산행을 마치고, 동부동사무소옆 산초식당으로 이동한다.

산초식당.

산초식당에서 오늘의 하산주는 삼합이 대기중이다.

하루의 피로를 한잔 술로 해소하고, 무사산행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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