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통일하고,찬란한 민족문화를 창조한 빛난 얼을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체득시켜 새로운 화랑을 육성하기 위한 "화랑교육원"
부모감사,이웃사랑,조국봉사.
화랑운동장.
화랑 교육원 내 다리교각.
도로옆 나무숲 사이로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산책로를 연상 케 한다.
화랑 활터.
소나무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헌강왕릉 입구.
도로 건너편은 곧 황금들녁으로 변할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조용한 소나무 숲 길로 이동한다.
헌강왕릉안내문.
신라 헌강왕릉 [사적 제 187호]
신라 제49대 헌강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유명한 경문왕의 첫째아들이다. 재위중 처용무가 크게 유행하였고,경주의 민가는 모두 기와로 덮고,숯으로 밥을 짓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한다.그러나 이때부터 신라는 점차 쇠퇴기로 접어 들었다.
왕릉 옆에 정강왕릉 가는 이정표가 설치.
다리테크.
정강왕릉 주위에 삼각점이 두 개소 설치.
정강왕릉 안내문.
정강왕릉 [사적 제 186호] 신라 제 50대인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헌강왕에 이어 즉위. 재위기간이 짦아,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고,자식이 없어 누이동생"만"이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되었다.
소나무 숲 길을 내려간다.
통일전 주차장.
동,남산 가는길 안내도.
현위치[통일전 주차장.]
통일전. 역사적 성업을 완수한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업적을 길이 찬양하고,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발전하는 조국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이 곳에 통일전을 조성 하였다.
정문을 들어서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연꽃이 피어있는 연지.
연지를 둘러싸고 있는곳 에 "화랑정"이 자리잡고 있다.
빈 배는 정박중.
노란 연꽃 두송이 피어오르고.
수줍게 서로 마주 대하는 연꽃
화랑정의 모습.
화랑정 편액.
삼국통일 순국 무명용사비.
흥국문.
좌우 태극기 게양대.
서원문 가는 길.
삼국통일기념비.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태대각간 김유신 사적비.
소원문.
통일전 본전.
좌측회랑.
우측회랑.
태종무열대왕, 문무대왕, 추존 흥무대왕 세 분의 영정이 모서져 있다.
태종무열대왕 영정.
문무대왕 영정.
추존, 흥무대왕[김유신 장군]영정.
향로.
좌우 회랑에는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보여주는 기록화 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김유신 장군 단석산 수련도.
황룡사 9 층탑 조성도.
외교문서에 능한 "강수 외교문서 작성도".
화랑 관창 출전도.
사천왕사 호국 불사도.[불도의 힘으로 당나라 군사 5만을 수장시킴] 당나라군이 갑자기 침범하자, 명랑법사 라는 스님께서 "문두루법"을 시행하여 당나라 수군을 격침.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절을짓지 못하고, 채색비단으로 임시 절을 만들고, 풀로 오방신상을 맺어 12인의 유가승들이 참여 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