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해 예법 구속받지 않아,편가르고 질시하는 관직에 환멸, 곳곳을 유람하다 39세에 세상을 하직한, 조선중기 문신 이자 천재시인 이었다.
임제의 물곡사비.
임제가 임종하기전,구슬피우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꾸짖었다고 전한다.
"사방 여러 나라 중에 황제를 자칭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 나라는 그러지 못하니,이런 욕된 나라에서 태어나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곡을 하지 마라."
이 얼마나 줏대있고 위대한 장부의 한마디였던가!
호남제일명소 회진.
백호임제선생기념비.
백호의 조부이신 귀래정 나주임붕 유허비.
나주 영모정 안내문.
영모정.
임붕 선생의 호를 따서 귀래정이라 하였으나, 후손이 재건 하면서 영모정으로...
넓은터 위에 세워진 영모정.
주위에는 수백년 노거수가 자리잡고 있다.
영산강의 수면위로 여명이 밝아지고 있다.
풍호나루 유래비 표지석.
풍호나루유래 안내문.
백호문학관. 임백호는 16세기 조선의 문호이자 풍류시인이고 낭만적이며 호방한 일세의 풍류가객이다.
평안도사로 부임받고 송도를 지나던 중, 황진이 무덤앞에 시문을 지어 벼슬에서 물려났고 당쟁과 벼슬에 환멸을 느껴 10년만에 관직을 물려나 전국을 주유천하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39세의 일기로 파란만은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문학관에는 남명소승 [제주도여행기] 원생몽유록.수성지,화사,[조선기행문화] 임백호집 1천여수의 시를 남겼다.
시간이 되면 방문 하려 했으나 아침 06시19분 이라 그냥 패스 한다.
천재시인으로 불리던 임제에 대해 노산(鷺山) 이은상(1903~82)은 “구금(拘禁)을 미워하고 방종(放縱)을 즐겨했던 사람은 소동파보다는 오히려 시인 임백호 선생을 더 높이 평가한다”면서 “조선왕조 500년에 가장 뛰어난 천재시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백호 임제 선생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폄]
한국천연 염색 박물관.
염색 체험장.
영산교.
오색광장.빛담쉼터.
나주평야.
이른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지를 박차고 나간다.
북암 배수장.
죽산보 방향으로 이동.
공도교 로 연결된 죽산보.
생태공원으로 내려가는 관찰테크구간.
자전거 체인 모양의 형태인 죽산보 전경.
공도교가 무척 길어 보인다.
영산강강변도로 [우완]공사중 이기에, 석관정으로 가지않고 공도교를 지나 좌안으로 간다.
죽산보 [우안] 이정표.
공도교를 오른다.
인증샷.
죽산보 인증센터.
볼수록 자전거 체인모습이다.
통합관리센터.
나주시 관광 안내도.
영산강 제4경 죽산춘효 사계절 들꽃이 손 흔드는 곳.
오누이 자전거 조형물.
공도교를 지나 좌안 도로, 나주36번 표시판 자전거 길.
뒤돌아보는 죽산보.
죽산보 오기전 우안길로 들어 강변도로 공사중, 죽산보 건너 좌안길로 접어드니 시원스레 길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