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골짜기 기암괴석 '화양 구곡'

화양동 주차장.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으며 팔각정 휴게소 뒷편 넓은평상에 자리 잡는다.

평상앞의 화양천.

시간이 남아 일부는 도명산 산행하고 ,나머지는 화양구곡 트래킹 하기로 한다. 성황당.

성황당, 이곳 주민들이 한해동안 풍년 농사와 안가 태평을, 기원하던 곳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안내도.

주차료 징수.

우산을 쓰고 데크로드를 걸어가는 분들.

화양탐방지원센터.

역사가 흐르는 화양구곡.

친 환경 전기버스도 운행 하네요.

정충식 작가의 A WalKer.

송헌구 작가의 도깨비 셀카.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며 신화속에 존재했던 도깨비가 그의 심벌인 방망이를 자랑삼아 자신의 모습을 찍고있는 형상이다.

김원근 작가의 엔젤맨.
추운 크리스마스이브 날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귀여운 모습으로 따뜻한 커피를 사들고, 기다리는 젊은 청춘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성복 작가의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달리는 사람 형태 연작은 욕망을 쫓는 모습일수도 있지만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도 표현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상상은 조각이 되고, 조각은 꿈이 된다'라는 주제로 '충북도와 크라운해태가 함께하는 見生(견생) 조각전'

생태 탐방원 조성공사.

우암이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화'와 일양래복의 '양'을 따서 화양동으로 수정 하였다 고 하나?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명승고적 입니다.

고사목과 화양천의 바위.

속리산 국립공원 화양동 분소.

약간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계곡의 큰 바위.

연자방아.

마치 얼굴바위 같기도 하구...

화양이교.

계곡 상류의 어도와 수중보.

계곡 하류.

안전난간지대를 걸으며...

제2곡인 운영담 안내문.

맑은 계곡물에 구름이 비친다 해서 이름 붙여진 운영담. 실제로 고요한 물에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왼쪽바위는 얼굴형 모습처럼 보이는 바위이다.

위쪽으로는 울창한 산세와 아래의 흘러내리는 계류.

제3곡인 읍궁암 안내문.

송시열 선생이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듣고 매일 통곡했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 넓고 둥근 바위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옛 선비의 절절한 충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읍궁암비.

읍궁암 안내문과 읍궁암비.

읍궁암 바위의 풍혈자국들.

화양동 사적비.

괴산 송시열 유적 안내문.

만동묘 배치도.

담장사이로 만동묘 건물이 나타난다.

담장내의 작은 돌탑들.

스승의 가르침은 가을의 태양과 같다고 하는 양추문.

화양서원.

화양서원 외삼문인 숭상문.

화양서원.

성공문 올라가는 돌계단은 폭이좁아 상당히 위험스러운 돌계단이다. 아무리 은혜입은 명나라고 대국이지만 우러러보아도 어찌 이렇게 위험스러운 폭이좁은 돌계단을 만든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저히 정면으로 못가고 자연스럽게 발을 측면으로 발끼리 교차도 못하며 합족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밟을때 마다 허리를 숙이며 넘어지지 않도록 발을 보며서 걷도록 되어 예를 갖추게 만든다.

만동묘정비 안내문.

만동묘정비각.

만동묘를 세우게 된 취지와 제사를 모시게되는 신종과 의종을 추모하는 뜻을 기린 비석이다.

폭이 좁고 아주 위험스러운 돌계단. 모서리로 해서 만동묘로 오른다.

만동묘는 효종 숙종 대 노론 영수인 우암 송시열이 임진왜란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 신종 의종 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라는 유명을 남김에 따라, 그의 수제자인 권상하의 주도로 1703(숙종29년)에 세워지고, 1776년 사액되었서나 ,1865(고종 2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지 되었다.

만동묘에서 바라본 중앙문, 다시 우측 담장 모서리로 내려간다. 바로 내려가면 앞으로 딩구른다.

한 켠의 기계실은 공사중.

증반청.

존사청.

존사청 내의 옛 화양서원 모건물들

풍천재.

한켠의 한자의 뜻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친필인 비례부동?

화양서원은 노론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 가운데 명성이 높고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서원의 권세가 강해지면서, 제수에 쓴다는 명목으로 각 지역에 화양묵패를 보내어 강제로 돈을 걷는 등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화양서원뿐 아니라 각 지역의 서원에서 두루 이런 폐단이 발생하자, 1858년(철종 9년) 영의정 김좌근의 주청으로 복주촌을 없애고, 재화 징수도 금지시켰다. 이어 1870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건물도 모두 헐리게 되었다.

화양서원 묘정비.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 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 또는 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 등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서원이 철폐되면서 묘정비도 묻히게 되었던 것을 광복 이후에 찾아 다시 세운 것이다.

화양서원 묘정비 안내문.

너럭바위.

커피샆을 지나고.

화양구곡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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