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매화축제는 해마다 3월이면 다압면 섬진마을 일원에서,열리는데 올해는 구제역과 AI 확산방지를 위해 취소 되었다.
다시 남도화합대교를 마지막으로 셔터를 누른다.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백일홍의 만개.
송정공원.
광양매화마을.
매화마을 인증센터.
매화마을.
매화마을(폄)
쫓비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매화 문화관 청매실농원일대인 매화마을전경.
영화 "취화선' 드라마 "다모' [아프나,나도 아프다] 촬영지 이기도 하다.
수월정.
수월정의 안내문.
조선선조 광양출신 나주목사 "정설"이 만년을 소일할 뜻으로 1573년 세운 정자인데,1999년 새로 정비한 모습이다.
정설의 후손들이 이곳에 수월정이 있었다는것을 기념하기위하여 세운 "수월정 유허비".
섬진진터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매복주둔 시켰던곳이며,도청창 창고를 설치하고 모군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다압 섬진진터 석비좌대. 17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4기만 남았다. 수군별장들의 공적비 좌대로 추정.
석조두꺼비상은 치아가 빠진 입모양,간략한 발모습 독특한 머리모양으로 투박한 조선시대 조각기법이다.
두꺼비기단과 나룻배모양의 "섬진강 유래비"
섬진강의 "섬"은 두꺼비 섬 자이고,"진"은 나루진 자 이다.즉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 이라고 하여 "섬진강'이라 하였다.
고려 우왕11년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시,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무리가 울부짖어 물러났다는 전설에서 비롯 되었다.
매화밭으로 둘러쌓인 전망조은 펜션.
공원에는 두꺼비와 처녀의 설화가 있는 금두꺼비상이 설치 되어있다.
두꺼비와 처녀의 설화.
섬진강의 유래.
새끼 금두꺼비.
두꺼비 광장.
두꺼비 총각.
건너편은 하동읍이다. 매화축제기간에는 임시 부교를 설치하기도 한다.
섬진강 부교(폄)
매화마을 축제을 위해 임시부교 설치, 하동쪽은 주차도 편리하고 차도 거의 안막힘.
섬진마을의 "새집다오" 철제 두꺼비 조형물.
포스코 기술연구원 재능기부로 상징 조형물 제작.
매화의고장 다압 섬진마을.
하동으로 가는 섬진교, 멀리 철도교량도 조망된다.
맹고불고불 길[맹형규 전 행자부장관의 이름을 딴 길] 진월제방-오사제방 6.2Km 구간 중, 웨이브 곡선 자전거 길.
신, 경전선 철도교량[삼랑진역-광주 송정역 구간]
구,경전선 철도교량.
하동으로 부터는 강폭은 넓어진다. 재첩 잡는 배도 보인다.
수령이 수백년 된 팽나무 .다시 비가 내린다.
하동군 고전면 신기리
섬진강 하류따라 시원스런 자전거 길.
진상-하동간 도로 공사 중, 맹고불 웨이브 곡선 자전거 길이 나타난다.
거북이 터널.
강폭이 상당히 넓어 자전거 길이 끝나감을 느낄수 있다.
강가의 갈대숲.
망덕포. 황병학의병 전투지 안내문.
일제 강점기에 광양망덕에 이주하고 어업권을 빼앗은 일본인 어부와 잡화상 가족들을 공격, 그 들의 가옥과 어선을 소각한 곳 이다.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 시비.
망덕포구는 윤동주 시인이 일본으로 가기 전 연희전문 동문인 정병욱에게 원고를 남기고,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송몽규와 함께 체포되어, 후쿠오가 형무소에서 27살 2개월의 짧은 생으로 사망. 마루장밑에 보관된 원고를 해방 후 1948년 정병욱에 의해 한 권의 시집으로 빛을 봤다.
윤동주를 시인으로 세상에 알린 곳이 망덕이기 때문이다. 망덕포구에서 윤동주가 직접 쓴 원고를 고이 보관했다.
시인의 사진과 생애에 대한 전시물이 보관되어 있다.
망덕포구일대, 바다쪽으로 테크를 설치 해 놓았다.
전어축제로 유명한 "전어"조형물.
포구앞의 재첩잡이 배.
옛 내음이 풍기는 망덕포구 횟집 상가.
백두대간 한반도 최장맥 산끝 "망덕산"안내도.
호남정맥의 주요산.
호남정맥의 시발점 망덕산.
저 곳이 망덕산[197m]인가?
배알도
태인대교.
대교를 지나면 바로 우회전하여 테크로 내려가야 한다. 직진하면 크게 우회 하여야 한다.
배알도 수변공원.
배알도 유인 인증센터. 섬진강 자전거 길은 여기서 종지부, 스템프에 도장을 확인하고 인증 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