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영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다야마 사다코)·이용구· 최정규 암살 임무 등 남만주 일대에서 조선인을 학살과 약탈을 일삼던 친일파 척결과 항일 독립운동 단체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하였다.대구광역시 두류공원내 조각 공원에 흉상이 세워졌다.(폄)
하얀 벚꽃의 향연.
솔밭 휴식공간을 지나며.
개천따라 채미정 으로 오른다.
채미정 입구 다리.
채미정 정화 기념비.
채미정 안내도.
회고가.
하마비.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이다
솔밭이 내려다 보는 개천 하부.
흥기문.
좌측의 구인제.
우측의 채미정.
경모각으로 들어서는 문.
경모각.
야은 길재선생 영정.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
길재는 고려 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자목련이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한다.
유허비각.
고려 문화주서 길선생 유허비.
두개의 협문.
‘채미’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